유아교사의 철학 다르게 ‘알기’와 다르게 ‘하기’

by gyobasaNPO | 2024-06-18 16:21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 실존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나에게 “다른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세요”라는 요청은 어려운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철학을 다르게 알아가고 철학을 다르게 해보자고 설득할 수 있을까?” (본문발췌)

 

 

“책을 읽어보라는 조언 말고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될지를 알려주세요.”
“선생님들은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철학은 어려우니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나 사례가 나와 있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

 

교사는 복잡한 교육 현장에서 기능인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 실존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나에게 “교육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세요”라는 요청은 어려운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어린이와 배움에 대한 교사의 철학적 이해와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에 따른 교육적 판단 및 즉각적 의사결정이 더 많이 요구된다. ‘다시 배우고 새롭게 사유하는 유목적 주체로서의 유아교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철학을 다르게 알아가고 철학을 다르게 해보자고 설득할 수 있을까?

 

 

유아교육에서 철학 알기와 하기의 현 위치

 

유아교육에서 교사가 철학을 안다는 것(knowing philosophy)과 철학을 한다는 것(doing philosophy)은 멀고도 먼 이야기이다. 교육철학 교과를 교직과목으로 선택하여 들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근대철학에 머물러 있거나 각 철학자의 사상과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요약된 2차 자료(secondary source)로 되어 있거나 철학을 교육적 도구로 활용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어 예비교사가 철학을 알거나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예비 유아교사 양성과정은 실증주의 중심의 방법론적 지식 습득에 포획되었다. 4년 동안 유아사회교육, 유아과학교육 등 여러 방법론적 교과와 실습/교육실무 등 역시, 방법론적 실제를 배우며 학생들은 바쁘게 보내지만 자신이 배우고 하고 있는 경험에 대하여, 새롭게 배운 지식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누는 시간은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심지어 사상마저 재현적 지식으로 간주되어 학생들은 정확히 알고 암기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기를 요구받으면서 점차 기능인이 되어갔다. 즉, 예비 유아교사에게 주체적,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함께 탐구하여 깨닫는 것을 연습하는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교사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은 해왔으나 실제로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길을 재생산해왔다.

 

 

유아교사, 철학 다르게 알기

 

철학은 인간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이다. 세계의 근원을 생각한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탈신화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최초의 ‘철학’이 되었다. 탈레스를 시작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철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졌고 이후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 근대사상을 거치면서 세계의 진리를 이해하는 두 가지 흐름인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타났다(사와베 유지, 2023). 데카르트 이후 인간이 주체가 되었고 니체, 하이데거, 메를로 퐁티, 비트겐슈타인 등의 19세기 철학은 인간의 정신, 신체, 언어, 경험과 실존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근대사상을 뒤흔들었다.

 

이와 같이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거쳐서 최근 포스트휴머니즘에 이르기까지 철학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철학의 개념과 역할이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존재와 사고를 탐구하면서 각 시대마다 독특한 관점을 통해 철학의 역할을 재정립해왔다. 특히, 현대철학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한 것처럼 철학자와 학문들 간 횡단에 의한 사생아의 탄생들이다. 데리다, 푸코의 후기구조주의의 언어적 전회를 거쳐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을 통한 이분법의 해체, 바라드의 신유물론, 포스트휴머니즘 사조에 이르면서 철학, 사회학, 과학의 학문적 경계는 점점 더 흐릿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철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대철학은 엄격하게 구분된 철학의 범주를 뛰어넘은 융합적 학문이자 사회에 대한 통찰이다.

 

따라서 유아교사가 (특히, 현대) 철학을 다르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다르게 안다는 것은 철학을 난해한 학문이자 재현적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을 넘어 나와의 마주침을 통한 존재인식론적 변형을 가져다 주는 실용적 도구로 사용하며 교사(나)의 인식과 생활 세계와 접속하며 읽는 것을 의미한다(이연선, 2023). 아래의 사례는 유아교육과 1학년 수업에서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사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유아교사가 되려는 우리들에게 철학사의 흐름을 알고 현대철학 강의를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란 질문을 던졌을 때, 학생들의 주체적이고 성찰적인 생각들 중 일부이다. 데리다의 말처럼 이것이 진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는 없으며, 학생들은 각자의 관계항에 따라 다른 지식과 의미를 생성해 냈다.

 

“교육과 철학이 어떤 연관성을 가졌길래 배워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과거의 철학이 요구한 교육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제서야 ‘아 나는 과거의 교육관에 얽매여 있구나’를 깨달았다.” (강유진, 2024)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마인드를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를 보는 시각에 이와 같은 관점이 얼마나 많이 투영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차미진, 2024)

 

“심지어 철학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과학도 결국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 “왜” 질문이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을 보고 단어가 굉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윤서준, 2024)

 

그 시대의 사조는 교육학 일반과 유아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학의 핵심인 ‘학습자와 교사’ 그리고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주고 학교 교육제도와 교육방식을 변화시킨다. 지금 전 세계는 교육혁명 중인데, 예로 핀란드는 독보적으로 기존의 교육방식을 탈피하며 고정적인 학년별 교육과정을 없애거나 교과 단위의 수업을 하지 않고 있다(야마구치 슈, 2023). 즉, 연령이나 교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지식이 융합되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생성의 관점으로 학습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아교육학에서 핵심 요소인 ‘유아와 교사’와 ‘놀이’와 ‘배움’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는 교육과정 문서를 통해 유아교사로 하여금 인본주의와 발달주의와 거리를 둘 것을 권하며 학습을 현대철학자 들뢰즈의 개념인 시작과 끝이 없고 배움의 주체가 없고 무한한 접속을 통한 생성을 강조하는 리좀을 토대로 재형상화한다. 또한 새로운 개념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교사가 기존의 이론과 개념에 대하여 비판적 성찰을 할 것을 강조한다(이연선, 2022). 학교 교육을 바꾸고 있는 국가의 사례를 살펴보았을 때 이들은 학교를 재현적 지식의 전수 기관으로 보는 주체 중심의 근대철학을 벗어나 있으며 현대 사상의 학문적 개념들의 침투를 허용했고 이른바 포스트-철학이 사상적 토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은 현실 사회와 관계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사조는 개념과 패러다임에 영향을 주어 실재(actual)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유아교사가 철학의 변화와 흐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는 실재이며 유아교육 현장 역시 실재이고 교사와 어린이는 실재 행위성(agency)들이다. 무수한 행위성을 만들어 내는 개념과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자신의 행위성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가 없다면 무방향으로 어지러이 흩어지게 되고 교사는 혼란을 겪게 될 수 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 『2019 개정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교사들이 겪는 혼란, 불안감과 모호함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계획하고 주도했던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운영했던 『3-5세 연령별 누리과정』은 들뢰즈식으로 표현하자면 코드가 지나치게 많았다. 수업계획안 작성 방법도 도입-전개-평가의 하나의 구조를 갖게 되었고 지나치게 세밀화되어 있었으며, 자유선택 활동, 소집단 활동, 대집단 활동으로 분할되어 있는 시간 또한 과잉코드화되어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보다는 유치원의 정해진 일정에 따라 활동들은 분할되었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었던 흥미영역 역시 코드화된 공간으로 쌓기 영역의 놀잇감과 가상놀이 영역의 놀잇감은 섞이지 못하였으며, 놀이 시간, 놀이 공간, 놀잇감의 배치는 어린이의 흥미가 이를 주도하지 못하고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처럼 과잉코드화된 유아교실에서 교사는 기능인으로 위치되었으며, 어린이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들의 배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여 배움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기보다는 코드에 적합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유아 중심·놀이 중심의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이전 교육과정과 비교한다면 탈코드화에 가까울 것이다. 교사는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기록하며 다음 활동을 준비한다. 놀이시간, 놀잇감, 놀이공간 등 교육 환경 사용에 대한 주도권을 교사와 유아가 나눠 갖게 되면서 탈중심화되었다. 탈코드화 사회는 스스로 기능하기 위하여 사회 공리계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자연스레 속도와 강도를 조정하며 살아간다(사와베 유지, 2023). 21세기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자본주의 사회를 코드화로부터 욕망이 빠져나오려고 하는 탈코드화된 사회로 보았는데 그의 21세기 사회에 대한 통찰은 유아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유아교사에게 철학 다르게 알기가 필요한 이유는 철학은 글과 언어라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생명력을 갖고 있고 의미작용을 통해 개념을 변화시키며 사회의 실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목적 주체로서의 교사에서 노마드(nomad)라는 용어에 우리는 예전에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들뢰즈가 유목적 삶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유목적인 존재의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목적이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하며 닫힌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경계를 넘어 어린이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열린 교류를 하는 특징을 의미한다. 이처럼 유동적으로 흐르는 유목적 주체로의 교사라는 새로운 존재의 의미가 들뢰즈의 철학으로부터 생겨났고 교사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쉬르의 언어학에 비추어 볼 때 유목적 주체로서의 교사라는 개념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말을 부여함으로써 생겨났으며 우리는 이 개념을 통과하며 비로소 유목적 주체로서의 교사로 실재화된다.

 

이와 같이 글을 토양으로 하며 리좀적으로 뻗어나가는 철학(책)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 내가 해오지 않았던 실제를 끌어내 보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가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으로 이와 같은 경험이 축적되면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어(유선경, 2024, p.281) 그것이 실제를 변화시킨다.

 

 

유아교사, 철학 다르게 하기

 

고대, 중세, 근대 철학의 뿌리가 본질주의와 동일성에 있다면 데카르트, 칸트, 헤겔 이후의 포스트로 응집되는 현대철학은 재현성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에서 상당한 사상적 진보를 해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 기독교 사상의 신의 세계, 칸트의 물질계, 헤겔의 절대정신에서 공통점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절대적인 원본(original)인 본질이 있다는 가정이며 그 본질을 이데아, 신, 물질, 절대 정신에 있다고 보았다.

 

이후 니체와 베르그송의 전근대 철학을 기점으로 20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과 21세기의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사상이 전개되면서 ‘본질주의’와 ‘동일성’의 철학은 ‘차이’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사물이나 존재를 보는 방식은 앞서 언급했듯이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사상과 특유의 개념에 묶여 있다. 스스로를 후기구조주의자보다 역사가로 불렀던 푸코는 시대마다 갖고 있는 특유한 것을 지식의 범위(에피스테메)라고 부르며 한 시대마다 다른 지식의 체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아동기에 대한 개념 또한 보편적인 어떤 것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기에 무수히 많은 아동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서미정, 이연선, 2023).

 

유아교사가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본질주의와 동일성의 철학을 넘어 차이와 실험의 철학으로 향한다. 어떠한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는 철학과 고정된 개념이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배우고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작업 속에 들어가 어린이, 교사, 놀이, 배움, 교육 환경 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험하며 현장에서 어제와 다른 차이를 생산하는 것이다. 철학한다는 동사적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사유는 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며 틈을 내어 변화를 발생시키는 과정이기에 행위로 나타난다(경기도교육청, 2024, 예정).

 

각양각색의 이색 문화를 접하기 쉬운 환경인 항구도시였던 밀레토스에서 인류 최초의 철학이 탄생했던 것처럼, 다른 문화, 다른 개념과 다른 관점을 접하게 되면 내가 갖고 있던 개념과 생각이 유일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즉, 현대철학의 낯선 개념들이 이와 같은 균열을 이끌어 내며 유아교사의 ‘철학함’을 이끈다. 교사는 어린이의 세계에, 새로운 철학과 개념에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함이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관점과 습관 위에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새로운 것을 채워나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유아교사의 철학함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과 사례는 경기도교육청(2024, 출판예정)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경기도교육청 (2024). 유치원 자율장학 지원 자료. 출판예정.
• 사와베 유지 (2023).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김소영 역. 원본 2013). 서울: 아름다운 날.
• 서미정, 이연선 (2023). ‘어린이’와 ‘아동기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어린이를/와 사유하는 교사를 향하여-. 한국유아교육연구, 25(4), 1-28.
• 야마구치 슈 (2023).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서울: 다산북스.
• 유선경 (2024).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 서울: 위즈덤하우스.
• 이연선 (2022). 2019 개정 브리티시 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의 ‘배움’과 페다고지에 대한 언어적 전환과 철학적 전제. 한국유아교육연구, 24(4), 5-27.
• 이연선 (2023). 읽기수행에 관한 후기질적연구: 포스트휴먼적 읽기와 유아교사~연구자 되기. 교육인류학연구, 26(1), 89-115.

Source URL: http://21erick.org/column/1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