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와 교육   2018-11-14 (수) 15:27
권재원  
   민주주의의 위기와 교육 (권재원).pdf (87.0K) [30] DATE : 2018-11-14 15:42:42

민주주의의 위기와 교육
 
 
권재원 (성원중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세계 곳곳에서 보인다. 권위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워 칭송을 받았던 나라들이 권위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1995년에 50년 만의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고 2008년에는 유럽연합 의장국까지 되면서 신흥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으로 여겨지던 폴란드의 민주주의는 그 정점에서 불과 7년이 지난 2015년 이후 빠르게 권위주의 정권으로 퇴행하였다. 힘들게 마련한 각종 민주주의적 견제 장치들, 언론의 자유 등도 속수무책이다. 1980-90년대 사이 피플파워를 손보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세웠던 필리핀과 태국도 권위주의 국가로 퇴행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와 무슬림 지역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였던 터키도 빠르게 권위주의 국가로의 퇴행이 진행 중이다.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을 견제하던 각종 장치들이 빠르게 무력화되거나 정부에게 장악당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잘 살게 해주겠다”거나 “당신들의 뜻대로 해 주겠다”는 지도자를 방해하는 각종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를 오히려 엘리트주의의 잔재로 치부하거나 기꺼이 포기하고 있다.
  신흥 민주 국가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같은 일이 진행 중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민주주의의 각종 제도, 규칙, 가치를 대놓고 조롱하다시피 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다. 불과 10 년 전만 해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은 ‘심슨 가족’ 같은 코메디 프로그램의 소재로나 쓰였다. 농담의 소재로 쓰이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아베, 프랑스의 마크롱, 그리스의 치프라스, 스페인의 산체스 등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는 인물들이다. 심지어 노골적인 인종차별,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등 극우정당들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마린 르펜은 거의 대통령이 될뻔했고, 북부동맹은 오성연합과 연합하여 이탈리아의 정권을 잡았다.
  좌파쪽도 사정이 비슷하다. 전통적인 사회당, 사회민주당의 세력은 약해지고 무책임한 선동을 일삼는 영국의 코빈, 미국의 샌더스, 스페인의 산체스 같은 인물들이 힘을 얻고 있다. 신중하고 책임 있고 포용력 있는 민주주의 정치가가 이런 선동가들에 밀려 사라질까 걱정될 정도다. 얼마 전에 있었던 매케인의 타계와 메르켈의 은퇴 선언이 웬지 상징처럼 느껴진다. 매케인은 중남미 이민과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 트럼프와 티파티의 기세에 밀려 공화당에서 힘을 잃었고, 천하의 앙겔라 메르켈도 거센 반무슬림, 반이민 여론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대 놓고 반대하고 조롱하는 선동적 비민주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도구로 삼아 권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수 국민의 뜻을 대변하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획득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권좌에 세운 것은 미국 국민 다수다. 마린 르펜을 유력한 정치인으로 만든 사람들도 프랑스 국민 다수다.
  이들은 반민주적인 주장을 ‘언론의 자유’를 활용해 거침없이 퍼뜨릴 수 있었고, 덕분에 ‘국민 다수의 뜻’을 소수 ‘엘리트’에 대항하여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권력에 다가섰다. 이들은 진정 민주적인 정치인이라면 신중해야 할 주장은 물론 거짓말까지 거침없이 하면서도 그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는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가령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로부터는 성소수자, 무슬림, 외국이민자의 앞잡이라는 선동에 시달렸고, 같은 진보임에도 불구하고 샌더스로부터는 월 스트릿 금융 귀족의 앞잡이로 몰렸다. 그 밖에도 여성 혐오에 기댄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각종 악담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들은 자기 주장을 실어주지 않는 신중한 언론사들을 지배층에게 포섭된 가짜뉴스라고 매도했다. 실상 자신들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으면서도.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만 해도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젊은 세대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던 이 SNS가 이제는 온갖 악의적 선전, 혐오 등을 퍼뜨리는 통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 비민주주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잘 살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과 함께, “당신들이 잘 살지 못하는 까닭은 ** 때문이다.”라는 손쉬운 적대자를 제시하면서 “**에게 장악된 조국을 되찾자. **를 옹호하는 기존의 정치인들은 좌/우 막론하고 모두 썩었다.”며 마구 선동했다. 장 자크 루소는 타락한 인민은 자유를 상실하고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딱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이리라. 어리석은 인민이 다수를 이룰 때 그들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무책임하게 던짐으로써 많은 지지를 모아 권력을 잡는 정치가를 ‘포퓰리스트’라고 한다. 21세기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은 테러집단도, 파시스트도 아닌 이들 포퓰리스트들이다.
  포퓰리스트들이 무책임한 약속과 선동을 퍼뜨리며, 대중은 여기 열광한다. 그러면 대중은 이들이 지목한 손쉬운 ‘적대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들의 권익을 박탈하라는 요구를 ‘다수’의 이름으로, 즉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내건다. 다수결의 원리상 이런 포퓰리스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민주적’인 정책이 실시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각종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와 그들을 따르는 대중은 이러한 권익 보호장치를 엘리트주의의 독선으로 몰아붙인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 언론’, ‘엘리트 언론’이라고 몰아 붙인다. 이들에게는 전문가의 권위도 필요없다. 이들에게 유일한 권위는 오직 다수의 권위뿐이다. 그들은 ‘다수는 현명하며, 다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번영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다. 다수에게 이익이 되게 하고, 다수가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걸 어렵고 신중하게 말하는 자들은 지배층,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일부러 감추는 자들이다.’라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 “집단지성이 해결할 것이다.” 따위의 말들이 바로 포퓰리스트들의 단골메뉴다. 다수는 항상 옳다는 이런 낭만주의적인 민주주의관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만 것이다.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겼을 경우 합리적인 해결책(합리적 해결책은 언제나 미지근하기 마련이다) 보다는 포퓰리스트의 무책임한 주장이 선택되고, 집단지성은 실현 불가능한 요구만 서로 주장하며 끝없는 갈등만 양산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다수는 현명하지 않다. 더구나 정보 비대칭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상당한 정보를 소화해야 하는 쟁점들까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은 욕망 앞에 나약하다. 욕망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상당한 수준의 지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다음에는 사려깊은 이성보다는 충동에 이끌리기 쉽다. 자신의 욕구를 당장 충족시키기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고 그게 장기적으로 자신에게도 이익이라는 것을 납득하는 과정은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DNA에 새겨진 본능이 아니다. 충분한 교육과 성찰이 필요하다.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배워야 하고, 지식과 정보를 얻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의 이익이나 장기적인 이익은커녕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순전히 자신들의 감정에 그럴듯해 보이는 지도자에게 몰입하며, 그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여 강변하는 교육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하는데 필요한 자연과학, 사회과학적 지식과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이렇게 평가하고 판단하여 내린 선택을 위해 당장의 욕망을 억제하고 절제할 수 있는 태도, 자신이 언제든지 소수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소수에 대해 관용하고 배려할 수 있는 상상력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능력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다양한 문학과 예술을 접하는 것이다. 결국 교과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과교육이 바로 민주시민교육이다. 혹은 민주시민교육을 목표로 수렴되어야 제대로 된 교과교육인 것이다.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민주주의가 계속해서 번영하며 선택 가능한 유일한 정치체제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에게 자리를 내어줄지 그 열쇠가 교사들에게 있다. 어쩌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높았던 교사에 대한 존중, 비교적 안정적이던 급여나 근무조건를 특혜라고 공격하고 시샘하는 풍토가 확산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은근히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위기의 1단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가장 민주적인 외양을 하고 있는 정부가 때때로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 바로미터는 그 정부가 교육, 특히 공교육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이다.
  그렇다면 이 정부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번영하도록 하는 정부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참고로 이 정부에는 교육도 문화도 모두 사회복지 담당 비서관 산하에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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