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머힐학교 교감 인터뷰] 방종 없는 자유는 비강제와 평등으로만 가능하다   2018-10-31 (수) 13:33
곽노현  
   방종 없는 자유는 비강제와 평등으로만 가능하다 (곽노현).pdf (94.4K) [20] DATE : 2018-10-31 13:33:16

[써머힐학교 교감 인터뷰]      
방종 없는 자유는 비강제와 평등으로만 가능하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써머힐학교는 방종 없는 자유를 모토로 알렉산더 닐이 1921년 설립했다.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전 세계 대안학교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다. 아직도 닐의 교육철학과 써머힐학교에서 영감과 자극을 받은 교육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대안교육의 작은 성지이기도 하다. 나는 방종 없는 자유, 책임지는 자유라는 이 학교의 슬로건에 이끌려 지난 10월 26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마침 방한 중인 써머힐학교의 헨리 레드헤드 교감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바쁜 일정 중에 시간 내줘서 고맙다. 먼저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1977년생으로 써머힐학교를 만든 A.S. Neil의 외손자이자 교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교장으로 있는 모친을 도와 현재 교감으로 학교경영을 맡고 있다. 나는 3살부터 16살까지 써머힐에서 학생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관심이 생겼다. 그 중에서 음악도 있었지만 제일 관심이 큰 건 지금까지도 나무 타기다. 나는 지금도 나무를 잘 타는 침팬지가 제일 부럽다. 대학에서 음향공학을 공부하고 3,4년 음악산업에 종사했다. 써머힐학교가 블레어 정부로부터 폐쇄명령을 받고 소송 중이던 1999년에 위기감을 느껴서 잠시 학교로 돌아와 일했다. 2003년부터는 써머힐에 전문적인 녹음스튜디오를 만들어 운영하며 음악교사로도 일했다. 지금은 교감직을 맡아 모친과 동생까지 가족 셋이서 학교를 경영한다. 
 
Q. 음악교사이자 음향전문가로서 어떤 걸 강조했나.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다면?
 
  음악은 정서표현의 수단이다. 본인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개인으로 발전하는 데 필수적이다. 음악은 사회성 함양에도 좋은 과목이다. 합주가 그렇듯이 말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음악재능이나 솜씨는 저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관심이지 재능이 아니다. 관심이 있으면 원하는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생은 각자의 필요를 따라가면 되고 교사는 학생이 조금 더 나가도록 도와주면 된다. 써머힐에는 강제가 없다. 
 
Q. 음악은 창의성의 한 표현양식이다. 혹시 음악교육을 통해 창의성교육의 비결을 알게 된 게 있으면 나눠달라. 
 
  음악교육에서는 자유롭고 온전하게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학생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내면의 느낌에 자유롭게 반응하면 그것이 곧 창의적인 거 아니겠나. 창의성을 이끌어내려면 억압하지 않고 신뢰를 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아동기를 보장하면 자신과 세상을 발견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능력이 생긴다. 창의성의 매직은 특별교과, 이를테면 음악이나 미술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과를 불문하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능력과 에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어디서나 드러난다.   
 
Q. 영국의 공립학교와 서머힐학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기숙형 사립학교 중 유명한 이튼스쿨과 차이는?
 
  나는 공립학교를 국가학교라고 부른다. 국가학교는 학업과 진로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삶을 중심에 놓고 정서와 사회성 함양에 중점을 둔다. 써머힐의 목표는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는 반면 공립학교의 목표는 20~30%만 도달 가능하다. 이튼학교는 억압적이고 통제가 강한 학교다. 써머힐은 아동기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발현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아이들에게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와 마음껏 뛰어놀 자유를 주는 게 특징이다. 우린 커리어 조언이나 상담도 안 한다. 단순히 졸업하고 뭐할 생각이니 정도만 묻는다.
 
Q. 써머힐의 교육철학, 무엇이 핵심인가?
 
  방종 없는 자유, 책임 있는 자유다. 무엇으로 이룰 것인가? 비강제와 평등이다. 이때 평등이란 첫째 동등한 권리, 즉, 동등한 참여권과 동등한 결정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회의에선 교사도 아이도 1표다. 두 번째 의미는 모든 사람이 개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써머힐에서 인종, 성별, 연령 등 집단범주는 아무 쓸데가 없다. 써머힐 회의에선 10살짜리 아이가 지구상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써머힐에선 아이에 대한 사회적 기대나 부모의 욕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알아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Q. 방종 없는 자유를 위해 규율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우리가 모든 규율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자기규율은 문제될 게 없다. 힘으로 규율을 강제하는 게 문제다. 그건 억압일 뿐 개성을 축하하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도 마구 떠든다고 하는데 워낙 외부규율이 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Q. 사춘기 아이들은 어디서나 말썽꾸러기다. 전 세계의 학교들이 사춘기 아이들의 일탈적 행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써머힐은 어떤가?
 
  사춘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파괴적인 분노 표출과 반항성은 아동기에 겪는 억압의 결과인 측면이 강하다. 써머힐에서는 비강제적 교육의 결과로 사춘기도 아동기의 자연스런 일부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편이다. 써머힐에 일찍부터 와있는 아이들의 경우 작은 다툼이야 당연히 있지만 분노, 증오, 폭력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없다. 써머힐에서처럼 억압 없이 자유로운 아동기를 지내면 사춘기는 물론이고 뒤늦게 성인기에도, 예를 들어 대학이나 일터에서, 아동기의 욕구를 어설프게 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
 
Q. 써머힐이 자랑하는 민주적 회의에 의한 의사결정은 써머힐처럼 학생 수가 적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학생 규모가 최소한 4,5배에 이르는 한국의 일반학교에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건 방법론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근본적인 것은 이견을 민주적 회의과정에 언제든지 부칠 수 있는 자유와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평등한 참여권과 결정권을 주는 것이다. 만약 한국학교가 진짜 원한다면 창의력을 발휘해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 공립학교에 민주학교 운동이 전개 중이다. 그 운동에 참여하는 어떤 학교에 가봤는데 6,7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모두 의회처럼 모여앉아서 의장의 주재 아래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더라. 물론 모든 결정을 다 모여서 할 필요는 없다. 소그룹에 맡겨서 결정하면 되는 사안도 많다.   
 
Q. 영국은 공립학교에서 시민성교과를 필수과목으로 따로 만들어서 가르친다고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써머힐에선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날마다 숨 쉬며 살아가게 할 뿐이다. 공립학교의 성격이 몹시 비시민적인데 시민성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나. 강제당하는 이상 시민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나기 쉬울 것이다. 시험과목으로 만들면 학생들이 점수 따기를 잘할지는 몰라도 시민성의 덕목과 연결되지 않고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과목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게 아니라 과목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부정적이다. 
 
Q. 인공지능시대가 써머힐 교육에 변화를 요구한다고 보나? 써머힐이 오래된 미래인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게 요구되는 시점인 것은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시스템의 부품으로 끼워 맞춰내기보다는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는 인간이 무엇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비전을 잃을 정도가 됐다. 인간성을 더 끌어안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써머힐에서는 아이들이 7,8년간 자연스럽게 놀이에 집중하면서도 필요한 때가 되면 얼마든지 집중해서 일반학교 수준의 학업을 따라간다. 90% 이상이 영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에 붙을 정도다. 게다가 써머힐 아이들은 관심, 열정, 상호존중, 자기이해, 아름다운 추억과 관계라는 무형자산을 학업에만 전념한 일반학교 아이들보다 많이 갖고 있다. 21세기에는 이런 특징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Q. 혹시 외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가정교훈, 그러니까 엄마한테 늘 전해 들은 알렉산더 닐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방종 없는 자유, 스스로 책임지는 자유 말고는 아마도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나의 결정과 선택을 지지했다. 물론 나는 내 행동과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건 내 몫일 뿐이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설령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나를 무조건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이게 닐 가족의 전통이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평등한 환경 속에서 강요 없이 큰 아이들이 방종 없는 자유를 누리는 책임 있는 성인으로 자란다, 이렇게 인터뷰의 전 취지를 요약하면서 마치겠다. 인터뷰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렇게 요약해도 무방하겠다. 인터뷰 기회를 줘서 나도 고맙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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