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방에 갇힌 아이들   2018-10-31 (수) 13:16
김경범  
   네모난 방에 갇힌 아이들 (김경범).pdf (79.6K) [12] DATE : 2018-10-31 13:16:45

네모난 방에 갇힌 아이들
 
 
김경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
 
 
  건축은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 듯이, 사람의 생각이 건물을 만든다면 건물도 사람의 생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축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 질문은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더불어 수업 혁신의 사례를 모으고 새로운 수업 방식을 고민하면서 생겨났다. 학교 교육을 바꾸려면 수업 컨텐츠 개발과 교사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네모난 교실과 획일적인 학교 공간에서는 새로운 수업 방식을 실현하기 어렵다. 공간의 형태와 구성이 수업 형식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식과 생각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화장실, 네모난 교실, 척박하고 획일적인 학교 공간을 이대로 두고 새로운 교육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 한창 논의되고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사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공영화하여 공간을 리모델링할 수도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신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모델링이든 신축이든, 기존 방식으로 평당 단가를 책정하여 똑같은 공간을 양산하지 말고 예산이 더 들더라도 새롭고 다양한 건축이 이루어지도록 허(許)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은 예산이 없다고 말하고, 관련 규정은 예외와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 규정 개정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사에 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 환경을 만드는 일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어른이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무상으로 밥을 주고 수업료를 면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공간을 만들어주자. 규정도, 예산도 사람이 만든다. 특히 우리 사회가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의 창의적인 생각을 키우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1) 교실 구조를 바꾸고 2) 학교 공간을 재건축하며 3)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지저분한 학교 화장실을 호텔급으로 고쳐보자. 고속도로 휴게소도 하는 일을 학교가 못한다면 대체 교육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실도 수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변형으로 만들고, 아이들에게 자기 방보다 더 쾌적한 학교 공간을 만들어주자. 선생님들은 어떠한가. 교무실에서, 교실에서, 또 다른 학교 공간에서 쾌적함을 느끼시는가. 학생도 불편하고 선생님도 불편한 학교에서 주체적인 삶을 경험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보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교에는 학생이 쉴 공간도 없고 놀 공간도 없다.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도 선생님도 공부하고 일할 뿐이다. 학생은 공부하고 교사는 일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생각한다면, 미래의 학교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식을 넣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에 지식을 넣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쉬고 노는 것도 공부다.
 
  접근이 통제된 군부대를 떠올려 보자. 부대 출입문 옆 위병소를 통과하면 연병장이 있고 연병장에는 어김없이 한쪽에 구령대가 있다. 구령대 뒤에 있는 군부대 건물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면 온갖 구호와 상패와 역대 지휘관 사진이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옆으로 행정실과 지휘관 집무실이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같은 규격의 네모난 내무실이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고, 복도 끝에는 화장실이 있다. 이제 우리가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는 학교 공간은 어떠한지 머리에 떠올려 보자. 군대처럼 학교도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담을 따라가면 정문이 있고, 정문 옆으로 수위실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과거 수위실을 지키시던 분은 제복을 입고 거수 경례도 하셨다. 수위실을 지나면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 한쪽에는 조회대가 놓여있다. 학교 건물은 그 위에 있다. 학교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면 많은 상패와 트로피가 놓여있고, 학교의 역사와 현황이 걸려 있다. 행정실과 교장실(어떤 학교는 이사장실)은 중앙현관 안쪽에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공부하고 또 “살아가는” 학교 2층은 같은 규격의 교실들이 군대 내무반처럼 복도 한쪽으로 이어져 있다.
  이처럼 학교의 공간 구조는 군대와 다르지 않다. 홍세화 칼럼 「민주공화국의 학교를 위하여」 (한겨레, 2017.6.2.)도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의 학교 공간은 일제 시절의 군대 학교가 원형이다. 민족정기를 세우느라 중앙청을 철거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정작 일제 군사 문화의 유산은 지금 우리의 학교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다. 여기에 교육부와 교육청의 획일적 행정편의주의까지 가세해 일제 군대 학교의 유산을 전국에 복제해 놓았다. 우리 초중고등학교의 군대적인 공간 구조는 단지 공공건축물의 공사비 표준이 제일 낮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마음의 문제이고 그것이 획일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로 표출된다. 네모난 공간에서 어릴 때부터 무려 12년을 살아가는 아이의 내면이 걱정스럽지 않은가. 학교 공간을 다양하게 바꾸는 사업을 우선적인 교육정책과제로 추진하자. 물론 학교 공간 개선사업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네모난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군대 건물 같은 교실을 짓고 있다. 대구교육청에서 지금 하고 있듯이 어떤 학교 공간을 만들지 아이들과 더불어 논의해보거나, 부산교육청에서 한때 했던 새로운 학교를 설계하고 구현해보는 일을 전국적으로 확산해 보자. 
 
  십 년 전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학교건축전시회에서 북유럽의 여러 학교 모형을 보았을 때 ‘이것도 학교인가’라고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공적인 재료로 운동장을 말끔하게 꾸미지 않았고, 건물과 내부 공간은 네모나지도 각지지도 않았으며, 개별 공간은 열리거나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는 어떠한가. 우레탄 운동장, 석면이 나오는 벽과 천장, 녹슨 수도꼭지, 차가운 시멘트 바닥, 공간을 가로막은 철제 정문, 높은 담, 굳게 닫힌 실험실, 먼지 쌓인 미술실, 메아리처럼 소리가 울리는 체육관, 이것을 다 어찌할 것인가. 몸이 네모난 방안에 갇혀 있으면 마음도 네모나져서 옆 반 친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인다. 사실 우리는 이런 질곡을 알고 있지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군대 학교가 내면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익숙하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민주시민교육, 창의성 교육, 모두 새로운 학교 환경이 필요하다. 예산이 없어서 아이들 안전이 위태로운 학교들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무슨 새로운 학교건축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정말로 교육청과 교육부에 예산이 없다면(그럴 리가 없겠지만), 무상교육과 급식에만 그치지 말고 집보다 더 편안하고 공부하기 좋고 놀기도 좋은 학교를 재건축하고 새로 건축하는 데 예산을 지원하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자. 앞으로 한 달 넘는 기간에 국회가 내년 예산을 책정한다. 건축, 재건축, 리모델링 등 학교시설 공사규정을 바꾸자고 요구하자. 지역마다 마을마다 어떤 학교를 만들지 모여서 토론하고,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구현한 모델을 보고 새로운 학교 교육을 만들어가자. 그리고 상상해 보자. 조회대 없는 운동장, 산책로가 있는 학교, 학교 중앙현관으로 옮겨진 도서관, 서가와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는 복도, 학생과 선생님이 떠들고 노는 카페, 옆 반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벽 없는 교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스마트 교실, 나무와 풀과 곡식과 나물이 자라는 밭......  그리고 학교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우리 아이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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