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또 참은 교사 덕에 노각의 싹을 틔운 아이들   2018-10-18 (목) 11:51
나정  
   참고 또 참은 교사 덕에 노각의 싹을 틔운 아이들 (나정).pdf (79.3K) [16] DATE : 2018-10-18 11:51:23

참고 또 참은 교사 덕에 노각의 싹을 틔운 아이들  
 
 
나 정 (동국대학교 교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어린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자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현직 유아교사들에게도 예비교사들에게도 조금 덜 친절하라고 이야기한다. 즉각 답을 말해주지 말자. 조금 참고 기다려보자고 말한다. 이 글은 조금 참고, 덜 친절한 교사 덕분에 이 가을 유치원 교실에서 노각이 싹을 틔운 이야기이다.    
 
 
1. 어느 유치원 텃밭과 교실에서 일어난 일  
 
  텃밭에서 노각을 보던 다섯 살(만 3세) 아이들이 “바나나”라고 하면서 교실로 가져가겠다고 교사에게 따 달라고 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건 바나나가 아니고.......”라고 말할 뻔 하다가.........참고, 노각을 따 주었다. 
  아이들은 노각을 “길다.”, “여기는 따가운데”, “딸기처럼 씨가 있어.”, “찰흙에서 쓰는 밀대 같아.”, “뿔 같아.”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바나나딸기”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보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는 등 활발하게 탐색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누워있다. 잘 건가 봐. 이불 만들어주자.”면서 휴지로 덮어주기도 하고, 전화기 놀이도 하고, 냄새 알아맞히기 수수께끼 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 두 번의 주말이 지나고 바나나딸기가 썩어서 두 쪽으로 잘라졌다.  
  “여기가 점점 까매지고 있어.”, “여기는 물렁물렁 해지는데?”, “어쩌면 좋지? 아프겠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약을 발라 주어야겠어. 밴드, 붕대가 필요해. 우리도 다치면 약 바르잖아!” 아이들은 유치원 구급상자를 교실로 가져와서 바나나딸기가 부러진 곳에 연고를 잔뜩 바르고 붕대로 감싸주었다. 
  교사는 감동했지만, 고민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약을 발라서 다 나았다고 새 노각을 가져다가 살짝 놓아줄까?’생각했다. 그러나..........이번에도 참았다. 
  냄새가 더 고약해지고, 색도 더 시꺼멓게 되자 아이들의 실망도 더 커졌다. 자기들이 아무리 돌봐주어도 소용이 없고 계속 아파진다고 걱정했다.   
 
 
2. 아이들의 깨달음
 
  “바나나딸기 진짜 약은 비야. 비가 필요해.”
  “맞아. 바나나딸기는 원래 땅에서 이파리랑 같이 있었지!”
  “우리랑 노는 것이 즐거웠지만, 원래 사는 곳에 있지 않아서 아파진 건가 봐.”  
  “우리가 다시 땅속에 넣어줘야 하나?”
  “땅속에서 나아서 다시 이파리가 나올 거야.”
  “얘는 땅에서 자라. 커다란 순무처럼.”
  아이들은 모두 동의했다. 바나나딸기는 땅이 필요하다고. 만 3세 다섯 살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교사는 커다란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아이들과 함께 흙을 가득 채우고 바나나딸기를 묻어주었다. 아이들은 다시 휴지 이불을 덮어주고 비오는 것처럼 물도 주었다. 
  10월 어느 토요일, 그 교실에서는 썩은 노각에서 바나나딸기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3. 참고, 기다려주는 어려움 
 
  이 교사는 두 번을 참았다. 노각이라고 이름을 알려주려다 참고, 노각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주어도 낫지 않고 썩는다는 것을 말해주려다 참았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즉각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덜 친절한 교사의 아이들은 새롭게 이름 붙인 그 물건과 함께 놀고, 측은해 하며, 궁금해 하며, 탐구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아이들의 따뜻한 감성, 자신의 아팠던 경험과 전에 보았던 그림책의 경험을 이 문제와 연계하여 해결하려는 통합적 사고력, 그리고 마침내 본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어야 한다는 엄청난 깨달음. 
  이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과학적 탐구를 통한 생태학적 지식 획득”이라고 근사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만약 교사의 설명에 의해서 이 과정을 가르쳤다면 단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와 함께 놀면서 배워낸 이 모든 과정은 어느 것 하나 가치 없는 배움이 없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갈 때도 필요하고, 너무 불확실하여 예측하기 어렵다는 미래사회를 살아갈 때도 필요하다는 여러 가지 역량을 모두 담고 있다.      
  다섯 살, 만 3세를 위한 어떤 장난감이 이만큼 가치 있는 놀이 상황을, 탐구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말라가는 줄기에 매달린 노각이 아이들 눈앞에 있었기에, 그 노각에 대해 즉시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교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인가? 역량있는 교사란 어떤 교사인가? 잘 가르치는 교사란 어떤 교사인가? 탐구를 조장하는 교사, 재미있게 배움을 창출해내는 교사. 깨달음을 얻게 하는 교사일 것이다.  
  그러면 탐구와 배움, 깨달음이 있으려면 교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덜 친절한 교사, 필요한 지원은 해주되 조금 더 참고 기다려주는 교사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선입견 없이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경이로움으로 대하는 교사여야 할 것이다.  
  어린 유치원 교사를 보고 나를 또 성찰해본다.  
 
 
* 이 글은 10월 13일, 안산 서원유치원의 한국어린이교육문화비평학회 공개세미나에서 직접 보고 들은 발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임.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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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방에 갇힌 아이들 
공정한 대입보다 교육적인 대입을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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