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교육제도의 운용   2018-09-20 (목) 09:56
나정  
   경직된 교육제도의 운용 (나정).pdf (78.0K) [24] DATE : 2018-09-20 09:56:28

경직된 교육제도의 운용
 
 
나 정 (동국대학교 교수)
 
 
  국가가 국민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최적의 제도를 갖추어서 접근한다는 것은 선진국의 한 가지 징표일 것이다. 정권을 잡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수립하기도 하고, 국민에게 더 나은 교육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기존의 제도를 개선하기도 한다. 그런데 제도가 지나치게 친절하고 자상하여 한 틈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철학이 담긴 제도가 하위 단계의 자율성을 적극 보장하면서 운용되는 그런 상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지, 고개를 들어본다.   
 
 
1. 사례 한 가지  
 
  지난 6월, 모 대학 부속 유치원에서는 국가가 제공해준 자료집의 6월 생활주제인 “우리 동네”를 그 시점에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교사 협의를 개최하였다. 미세먼지가 많다고 연일 방송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의 결과 6월에는 실내 활동을 주로 하고, 미세먼지가 잦아든 9월에 “우리 동네”를 다루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유치원은 평가에서 우리 동네라는 주제를 6월에 다루지 않았다고 감점을 당했다.
  교과서와 진도 개념을 유아교육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점 문제를 당연한 것이나 하찮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아교육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자.   
  국가가 고시한 유치원 교육과정과 어린이집 보육과정 총론에는 교육보육과정 운영 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활동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고 교수학습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생활주제를 중심으로 통합적 접근을 하라는 것이다. 고시문의 이 조항을 잘 이행하고자 정부는 월별, 주별로 생활주제를 정하고 이 주제에 대한 통합 활동을 구상하여 교사를 위한 해설서, 활동 자료집을 제공하고 있다. 추석이 들어있는 이번 주와 다음 주, 대부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서울이건 지방이건, 만 3세이건 5세이건 간에 추석, 보름달, 송편 관련 노래, 동시, 그림책 보기 등이 주요 활동이 될 것이다. 
  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도입하여 통합적으로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유아들의 생활 경험을 배움으로 연계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교육방식이다. 그리고 정부는 전국에 자료집을 배포하면서 교사들에게 “참고자료”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앞에 제시한 사례와 같이 평가를 통해 자료집에 제시한대로 할 것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의 유아교육학자들은 전국의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실에서 동일한 시기에, 동일 연령대의 유아들이, 똑같은 주제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놀란다. 그리고 묻는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게 가능한지. 유아들의 흥미는 고려하지 않는지를.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다. 너무나 친절하고 자상한 우리 정부의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자료집과 그 자료집의 활동을 제때 했는지 안했는지를 확인하는 평가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2. 다른 나라도 그런가?
 
  유럽 많은 국가들도 국가가 유아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 월별 주제를 정해주고, 자료집을 개발하여 전국에 제공하고, 국가의 자료집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평가에서 감점을 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내용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유아들의 관심, 흥미, 지역 특성 등을 반영하여 단위 기관, 학급별로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프로젝트 활동이 주 활동 방식이기 때문에, 같은 날 어떤 지역의 여러 개 기관, 학급을 방문하더라도 유아들의 집단마다 다루는 주제가 다르다. 한 학급 내에서 두 세 개의 주제가 다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가 참고하라고 제공해준 자료집에서 제시한 시기와 다른 시기에 주제를 다루었다고 평가에서 감점을 당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지역만 그럴 것이라고, 참고만 하라고 했는데 그랬다고 답할지 모르겠다. 해당 유치원장이자 교수한테 그 사례를 직접 들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말을 듣는 순간, 교육 관련 제도가 너무나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브라질이 생각났다. 
  지난 여름 역사 관련 학회를 따라서 남미를 다녀왔다. 30년 넘게 살았다는 브라질 가이드는 남매를 키우면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극소수의 최상류층 아이들만 가는 최고의 사립에 보내느라고 한 달에 천만원씩 들었는데, 그 결과 딸은 미국의 로스쿨에 다니고 아들은 브라질 최고의 국립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영역이 교육인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닐만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간의 차이가 너무나 큰데도 기득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개선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제도는 어디에서는 소수 누군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또 어디에서는 다수 국민을 위한 사회적 장치로 작동한다.  
 
 
3. 그러면...
 
  국가 교육과정은 우리가 향해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도 다양한 접근 방법을 허용하는 민주적인 양태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아단계의 교육과정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단위 기관이나 집단, 개인의 존중은 자율성 허용 정도로 판단할 수 있다. “생활 주제”를 유아들 스스로 흥미에 따라 결정할 여지를 주지 않고, 유아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의 판단도 존중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우리 동네”라는 주제를 바닷가 유치원에서는 여름에, 강원도 산골마을 어린이집에서는 겨울에 다루면 유아들이 더 재미있어할 진짜 생활 주제가 아닐까. 추석을 앞둔 이번 주에도 공룡이야기를 계속해가는 4세반이 있고, 각자 원하는 송편소를 만들어 송편을 빚는 5세반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유치원 교육과정, 어린이집 보육과정 운용방식일 것이다. 
  대학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평가를 하고 또 평가를 받는다. 학교에 대해서 평가가 아닌 진단을 하고, 진단의 이유가 해당 교육기관의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스웨덴 교육청 교육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진보교육감 시대의 딜레마와 돌파구 
혁신학교 학력(學力) 저하에 대한 교육감협의회의 우려스러운 대응 
 
 
  • 오늘
    298
  • 어제
    544
  • 최대
    3,459
  • 전체
    952,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