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을 위한 새로운 과학고를 위해   2017-09-06 (수) 14:58
김경범  
   모든 학생을 위한 새로운 과학고를 위해 (김경범).pdf (90.2K) [4] DATE : 2017-09-06 16:16:11

모든 학생을 위한 새로운 과학고를 위해
 
 
김경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 장면 1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하려고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곧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가 “수준 높은” 중학교 수학을 미리 배울 수 있도록 하려고 학원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찾아간 강남의 학원에서는 아이가 들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강좌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래 아이들은 이미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준비반에 있고 어떤 아이는 국제올림피아드를 준비한다면서 수학의 정석을 풀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보여줍니다. 중학교 수학 선행학습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는 중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재능 있는 아이인데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며 은근히 힐난합니다. 영재고와 과학고를 준비하다가 자립형사립고를 갈 수도 있고, 정 어렵다 싶으면 일반고에 가서도 학원에서 선행 학습한 덕분에 내신과 수능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부모가 너무 늦게 찾아와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미 한참 뒤쳐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 학원을 다녔던 홍길동은 KMO에서 상을 받고 영재학교에 들어갔고 또 국제올림피아드에서도 상을 받아서 지금은 유명 의대를 다니고 있으며, 이몽룡은 명문대 수학과를 나와서 억대 연봉의 금융 컨설턴트가 되었다며 학원을 다녔던 아이들 사례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부모는 덜컥 겁이 나서 패닉에 빠집니다. 아빠는 엄마 탓을 하고 엄마는 아빠를 째려보면서 마음속으로 말을 삭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몽매함 때문에 아이의 인생이 출발부터 뒤쳐졌다며 가슴을 칩니다. 중고등학교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시험 문제도 정상적인 진도의 교육과정에서 출제하니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엄마는 학원 담당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학원에서 개설된 정규 수업은 아이가 따라올 수 없으니, 명문대 수학과에 다니는 학원 선생님의 개인 과외와 낮은 수준의 또 다른 맞춤형 개인 강좌를 “특별히” 만들어 드릴 테니 이 강좌를 수강하면서 중학교 수학부터 빨리 이수하라고 선심 쓰듯 청구서를 내밉니다. 부모는 예상을 뛰어넘는 학원비에 놀라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후 대책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 장면 2
  명문대 수학과에 다니고 있는 영재는 초등학교 6학년 수학 과외를 해달라는 학원의 전화를 받습니다. 중학교 수학을 속성으로 이수하는 일종의 특별한 고액 과외입니다. 과학고를 나온 영재는 대학에 들어온 이후 과외와 KMO 대비 학원 강의만으로 매월 한 학기 등록금이 넘는 돈을 벌고 있고, 더 높은 단계인 올림피아드 대비반에서 강의하는 친구는 한 달에 일 년 등록금을 벌은 적도 있습니다. 영재 부모님도 초등학교부터 많은 사교육비를 썼습니다. 그래서 영재도 내심 부모님 투자 덕분에 지금의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재는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한 직후부터 투자한 돈을 회수한다는 생각으로 과외와 학원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이 본업이 아니라 학원 강사와 과외 선생님이 본업 같습니다. 그래도 대학 첫 학기부터 평균 이상의 학점은 받고 있습니다. 깔아주는 일반고 친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일반고 출신 친구들과 차이가 없어져 갑니다. 그런데 영어 원서를 읽어내기는 여전히 어렵고, 한글로 보고서를 써야하는 글쓰기 과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역사, 철학, 문학, 지리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도 잘 모릅니다. 초등학교부터 수학을 잘했고 수학 덕분에 칭찬도 많이 받다보니 수학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과학고에 갔고 대학에도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과목은 못해도 별 다른 불이익이 없었습니다. 이수할 단위도 너무 적었고, 수학과 과학이 아닌 과목들도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처음 들었던 수학 강의도 이미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이라서 공부를 하지 않고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수학을 못했던 주변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대학에 온 이후로 아무 공부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금 영재는 미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수학자가 꿈이었지만,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계속할 꿈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취직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연봉이 생각보다 너무 적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학원 수업을 조금만 더 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업계에서 이름도 꽤 알려져 있는데 포기하고 떠나기도 아쉽습니다. 영재의 눈앞에는 현금이 어른거립니다.
 
  두 장면은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허구는 아닙니다. 정부는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와 국제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자립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내년부터 고등학교 입학생 선발 시기를 동시에 맞추어 ‘우선 선발권’을 없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고 전환 대상에 8개의 과학(예술)영재학교와 20개의 과학고는 빠져 있습니다. 아마도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할 과학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창의적인 지식이 미래 사회에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며, 더구나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과학 인재 육성에 더 많은 노력과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기하고자 하는 논점은 ‘지금의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들어가기 위해서 학생과 학부모가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고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정말로 나중에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역량을 키우는데 기여하고 있는가’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본연의 목적에 맞게 이 두 유형의 학교가 운영되는지 이 기회에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라는 이중적인 유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역 차이와 수요 등을 고려한 행정적인 형평을 맞춘 듯합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준비 과정과 편향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미래의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데 적합한지 다시 검토해야 하지만, 위에서 본 두 장면처럼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선행학습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이들 학교의 수업이 대학 수준의 선행학습을 하는 데 그치고 있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반고에서는 창의적인 지식을 창출할 과학 인재를 어떻게 육성할지도 같이 논의해야 합니다. 인재는 영재학교 및 특목고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달 발표되었다가 폐기된 수능 시안처럼 일반고가 수능에 맞춰 과학 1을 중점적으로 배운다면(물론 교육과정 편성에 따라 과학 2과목도 이수합니다.) 일반고 학생과 영재학교 학생이 대학에 가서 한 교실에서 같은 강의를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점점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반고는 결국 이류학교가 되고 맙니다.
  영재학교는 입학 준비과정과 교육과정이 정말로 영재 양성을 위해 만들어져야 합니다. 영재가 선행학습 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지식은 호기심에서 출발하는데 선행 지식을 주입받은 학생들이 얼마나 호기심을 갖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호기심을 키우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런 훈련과 연습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 학교의 교육과정이 여기에 맞춰져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영재학교는 호기심을 키우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 도전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올림피아드 문제 풀이의 타당성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만을 전부로 보는 방식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입학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도 단지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자리만 내주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학생 선발의 새로운 관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재능을 선행 학습을 통한 어려운 문제풀이 능력으로만 보지 말고 재능의 개념을 확장해야 합니다. 호기심도 재능이고 도전 정신도 재능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발굴될 수 있는 준비 프로그램을 갖추기 위해 각 지역의 영재교육기관과 영재학교를 교육과 선발의 관점에서 연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영재교육기관이 선행학습이 아니라 진짜 영재를 길러내는 다양한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특성의 영재들이 모여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선행학습보다는 영재학교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울 듯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미래에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영재를 기르고자 한다면 영재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을 점검해야 하고, 대학도 맞춤형 수업방식으로 새로운 교양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합니다.
  과학고는 해당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 없는 학교, 즉 특화된 수학 및 과학 수업을 원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학교로 전환하기를 제안합니다.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대신, 지역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 실험 및 탐구활동을 진행하고, 선생님들이 새로운 수학과 과학 교수법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자는 뜻입니다. 기존의 학교는 그 학교에만 소속된 건물, 선생님, 학생이 있는 전속(專屬) 개념을 전제로 합니다. 새로운 학교는 이 전속 개념의 부분적인 해체를 의미합니다. 여러 학교에 소속된 학생, 여러 학교에서 강의하는 선생님, 서로 다른 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교 건물 등을 의미합니다. 이 새로운 학교 개념을 적용하여 기존의 과학고를 전속 학생이 없는 과학실험학교 혹은 과학탐구학교로 전환하고, 해당 지역 일반고 학생들 중에서 원하는 학생 모두가 이 학교의 학생이 됩니다. 이 학교는 과학 실험, 탐구 활동, 고교과정에 대한 심화 이론 교육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학교 자체 실험프로그램 + 일반고 실험 및 탐구활동 진행 + 학생이 제안하고 선정된 연구 활동 + 특화된 분야의 강의 프로그램’을 갖추고 운영합니다. 학생 수 감소에 따라 학생이 모자라는 학교가 생기고 있는 현실에서 기존의 과학고와 통폐합하고 남은 일반고를 새로운 학교로 바꾸면 일반고 교육 역량이 제고되고, 학교 활동의 사교육 의존을 줄일 수 있으며, 기존 일반고에서도 학생부 기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학생 수 감소를 새로운 교육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일반고 학생들이 더 좋은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기존의 과학고를 모든 학생을 위한 과학고로 전환해 보는 방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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