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소담 열한 번째 손님 - 남다른 재홍 씨의 열아홉, 스물   2012-09-20 (목) 21:11
관리자   1,943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재홍과의 소담소담 - 남다른 재홍 씨의 열아홉, 스물
 
그는 수능 시험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양심적 수능 거부’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껏 학생회장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친구들에게 휩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리는 그 10대 시기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기 위해 경영학 책을 읽고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을 위해 상담 책을 읽고,
학생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대외활동도 마다 않고 참가하던 고교생.
‘대입’이 학생들의 목을 조이고야 마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서
스스로 밧줄을 끊고 자유로워진 이단아.
그 고교생은 이제 ‘교육’을 바꾸기 위해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고 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김재홍의 열아홉과 스물 즈음에 걸쳐진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남들과 좀 다른 졸업생의 삶
 
지난 2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생활이 궁금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NGO 근무를 안 해 봤으니까 잘 모르겠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일한다고 하면 다른 분들이 ‘일 많은 곳이다’ ‘힘들지 않냐’ 그런 말씀 하시는데 NGO라면 다 그렇지 않나 해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쓸 수는 없는데 할 일은 많으니까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려면 일 당 백을 해야 하죠. 이해해요. 
요새는 일단 5일 중에 두세 번은 야근이 있는 것 같아요.
 
야근도 한 9시 이전에는 퇴근하는 야근이 있고, 거의 밤을 지새우는 야근이 있을 텐데….
글쎄요, 잔업이 있어서 야근을 하면 좋은데, 그런 게 아니고 토론회 같은 행사가 있어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죠. 각각 다른 분야들이 돌아가니까 지원할 사람도 필요하고 상황도 봐야 하고…. 집이 멀어서(재홍 씨의 집은 천안이다)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넘어요. 그러면 자야 해요. 아침에 출근해야 하니까. (웃음)
 
출근은 몇 시쯤 해요?
7시 안팎에 나와요. 
 
저런, 아침은 먹고 다녀요?
먹을 때도 있고 급하면 그냥 나올 때도 있고요.
 
고등학교 때 생활보다 힘들지 않아요?
일하는 것은 괜찮은데 정리가 안 되니까 그게 좀…. 특히 저 같은 경우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기획도 머릿속으로 해야 하고, 제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고…. 그런데 아침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가니까 그럴 시간이 없어요. 일도 100% 만족해야 넘어가는 성격인데 ‘파바박’ 해야 하니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와중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이렇게 정신을 차리면서…. (웃음)
 
그것 이외에 하고 있는 일은 없어요? 
개인적으로도 세미나 같은 것도 다니고 있어요. 요즘 비영리민간단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아서….
 
같이 공부하는 팀이 있어요?
그런 것은 없고, 행사 같은 것 많이 있잖아요. (아….) 그런 걸 다니고 하다 보면 그, 이제, 5일 내내 12시에 들어가는 거죠. (웃음)
 
무엇보다 천안에서 출퇴근하는 게 쉽지 않겠어요.
힘들지 않게 잘 조절을 해야할 것 같아요. 처음엔 ‘이동 시간에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전혀 실천이 되지 않고…. 
 
(웃음) 졸아요? 
네. 졸거나, ‘이 시간만이라도 탈피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 같은 걸 하면서…. (웃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어떻게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웹에서 봤어요. 그때 처음 했던 게 소책자를 신청한 것이었어요. 주변에 나눠주면 괜찮겠다 싶어서요. 그러다가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 출범식을 작년 10월 20일에 했는데 가야겠다,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가게 됐어요. 그때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의장이었는데, 말하자면 청소년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범위 안에 들어온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끝날 때, ‘학생회연합회 누가 왔다는데 얘기 좀 해 보라’고 하셔서 처음 회원들 눈도장을 찍었던 거죠. 
 
그랬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부터 중요하게 벌인 일 중 하나가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이예요. 입시 문제들은 결국 대학 문제이기 때문에 대학을 바꿔야 된다는 취지로요. 요새 분위기도 좀 형성이 됐고…. 저희 단체에서는 10년 이내에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정책적 부분을 연구원들이 하시고, 저는 그것을 캠페인으로 대중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캠페인 관련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어요?
대학에 대한 대양한 계층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스토리플랫폼’이라고 ‘TED’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프로젝트예요. 그 행사를 2월 말에 했고, 그것을 격월간으로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컨텐츠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같이 계신 분이 커뮤니케이션 전공이셔서 그걸 유포시키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고 계세요. 그 외에도 블로그 기자단을 선발해서 컨텐츠를 계속 만들고 있고, 청소년 정책워크샵, 전국순회 공청회, 일만공감 서명 같은 것들을 하려고 해요.
 
 
  이 모든 것의 시작
 
 
그동안 활동했던 단체가 많지 않았어요? 조직 활동의 역사랄까. (웃음) 혹시 지하 사조직 이런 것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웃음)
소속되어 있었던 단체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모임이나 조직 선에서는 여기저기 막…. 
 
많았죠? 
그랬어요. (웃음) 고등학교 1학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거의 아침에 나갔다가 12시에 들어오는 정도로 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어요. 뭔가 아니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원 같은 것도 힘들지만 자발적으로 다니는. 
 
아, 그래요?
네.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때 특히 학원을 많이 다니는 시기거든요. 과학 단과 해야 되고, 국어 단과, 영어 단과…. 다 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우연하게 어떤 캠프에 참여하면서 대외활동을 처음 하게 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바뀐 것 같아요, 좀 많이. 그때는 ‘공부를 좀 해야겠구나….’ ‘세상이 많이 넓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어요. 일단은 ‘학생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학생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했어요. 일단 경영학적인 지식도 좀 있어야겠고, 학생들의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 대북 관련 문제, 인권 문제 같은 것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었고요.
 
도대체 어떤 캠프였길래 그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이게 좀 이야기가 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완전히 이공계열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관심 많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분명히 IT나 자동차공학의 융합 분야 전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저 자신과 다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때도 한참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대외활동 정보가 유통되던 시기였는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라고 우리나라 정보통신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기관에서 청소년 캠프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음….
거기서 학생 100여 명을 선발해서 4박 5일 무료 캠프를 진행한다는, 엄청나게 유명하신 분들 강연이 매일 있는 발명 캠프였어요. 강의를 듣기도 하지만, 참가자가 낸 아이디어를 연구원들과 보완해 가지고 마지막 날에 발표를 하는 거였어요. 심사해서 좋은 발표는 무료로 변리사를 붙여서 특허청에 신청까지 하는…. 이건 뭐, 완전 나를 위한 것이구나…. (웃음) 그래서 무조건 신청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운 좋게도 뽑혔어요. 그때가 2회째 행사였는데 1회 참가자들 면면을 보니까 과학고, 영재고, 카이스트…. 이런 학생들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긴장을 하고, ‘꿀리면 안 되겠다.’ (웃음) 그래서 전날까지 책을 보면서 준비해서 갔어요.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어났던 거죠? (웃음)
매일 두 번씩 강연이 있었거든요? ‘구글’에서 유명한 분도 오시고…. 저는 IT 업계의 최신 동향이나 기술에 대해서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안 하시고 일주일 내내 창의력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거, 뭘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거예요. 그런 캠프에 가서 강연을 들으면 그 분위기 때문에 진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잖아요. 거기에서 제가 선동(?)당했던 주제는 ‘어떤 분야건 간에 창의성이 없으면 최소한 흔히 말하는 성공은 불가능할 거다.’ 하는 메시지였어요, 전부 다. 
 
아마도 그 무렵이 ‘창의’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교과부에서 ‘창의인성교육’이라는 얘기 같은 걸 하면 좀 공허하게 들리잖아요? 그런데 그때 집중적으로 들으니까 공허하게 들리는 게 아니고 확실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음….
거기 온 친구들과 조별로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실망했던 거예요. 솔직히 ‘별것 아니구나….’ 과학고라고 해서 그 분야에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열정도 보이지 않고, 창의력도 없고…. 거기서는 특허를 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연필 뒤에 지우개를 붙인다는 실용신안 정도의 얘기만 하는 거예요. 대화를 했을 때 느낌들이 제가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웠어요. 그러면서 ‘아, 속았다!’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줄 수 있나요?
그동안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고, 교육에 대한 실망감이랄까 강한 배신감? 이런 걸 혼자 많이 느꼈어요. 당시 고 1 여름방학이었는데 마침 그때가 문․이과 결정을 하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인문사회계열로 가야겠다, 교육계에 계속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때부터 교육의 문제를 저의 문제로 가져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뭔가 바꿔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첫 단추로 생각했던 것이 학생회였어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우리 학교를 좀 더 바꾸는 거다, 그러면 이 학교를 거쳐 가는 애들한테 엄청난 이득이 될 수 있겠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 IT 별 것 아니네?’ 하면서 ‘내가 가서 그쪽 판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물론 한 가지 이유만으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이 업계에서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봤더니, 중간 이상은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까지는 나름대로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속에 제 생각은 아무것도 없고 기존 것을 외운 것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인문사회계열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77 디도스 공격’이 있었어요. 제가 이공계라면 디도스의 기술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때 저는 안철수연구소의 주가를 봤단 말이죠. 그런 몇 가지 저의 성향들을 캐치해 내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공계인데 왜 내 책장에는 경영학이나 정치 관련 책들이 꽂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확신을 가지고 내가 인문사회계열이라는 근거들을 짜 맞추기 시작한 거죠. (웃음)
 
 
  그의 ‘올드’하고도 ‘헤비’한 ‘멘탈’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을까 궁금했어요. 과학고 친구를 만나도 실망할 정도면…. (웃음) 
(웃음) 뭐라고 해야 되지…? 그러니까, 폭 넓게 애들이랑 잘 사귄다, 그건 아니었어요. 저도 어려웠고, 그 친구들도 어려워했고…. 왜냐하면 관심사가 달랐으니까요. 그 친구들은 게임이나 운동, 연예인 얘기를 하는데 저는 전혀 관심 없고…. 소녀시대가 몇 명인지, 저 아직도 몰라요. (웃음) 입시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요. 그러니까 일반 애들하고는 필요한 말만 했고, 색깔이 맞는 애들하고 주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할 수 없었던 게, 학생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은 오로지 학생회였어요. 말하자면, 저는 천안고 학생회의 상근자였어요. (웃음)
 
대학을 갈 것도 아니라서 입시 위주의 수업을 듣는 게 힘들었겠어요.
수학이나 문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수업이라면 들었지만, 대놓고 처음부터 EBS 문제 풀이를 하는 수업은 하나도 건질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수업 시간은 제 앞에 투명막이 쳐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웃음) 학교 안팎의 활동을 주로 했고요. 
 
야간 자율학습 같은 것은 했어요?
2학년 때까지는 했는데 3학년 때는 안 했고, 보충수업도 안 했어요. 
 
선생님들이 이해를 해 주시던가요? 대학을 안 간다는 것도…?
이해는 못 하시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아세요. (웃음)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바뀔 애가 아니라는 그런 인상들을 받으셨던 것 같고…. 왜냐하면 학생회를 할 때도 다르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너무 애들을 함부로 대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최소한 저한테는 그렇게 대하셨어요. 하여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에게는 ‘친구’라는 느낌보다는 ‘대중’ 혹은 ‘학생회 회원’이라는 느낌이 더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서비스를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관점이 많았던 것 같고, 그런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호오….
아마 애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평소에는 관심사가 다르니까 적절한 농담 수준의 말만 하다가, 진로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 대외활동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 입시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에는 저에게 다가왔어요. 
 
교사들이 하는 역할을 한 셈이네요. (웃음)
네. 선생님들하고는 상담이 어렵잖아요. 시간도 별로 없으시고…. 개중에 찾다 보니 저를 대안으로 찾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음….
학생회를 하고 있었고 교육적인 것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을 잘해 줘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도서관에서 상담 관련 책도 살펴보고…. 저랑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이 저 때문에 진로가 확 바뀌는 걸 보니까, 내가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교사들이 상담하거나 조언하는 것들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겠구나, 깨닫는 그런 과정들이었어요.
 
지난 번 방담(*재홍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 만남은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07_4&wr_id=1)할 때 느꼈던 건데, 선생님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웃음) 보호자 같기도 하고…. (웃음)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멘탈’이 좀 그렇다는…. (웃음) 어찌되었건, 활동하는 데는 편리했어요. 
 
 
기본적으로 어른 말을 쓴다고 해야 하나? 세대 차이가 많이 나면 어떤 느낌을 얘기하면 그게 서로 잘 안 맞는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재홍 씨는 그런 이질감이 전혀 없어요.
생각들을 여러 가지 하다 보니까 그런가? 모르겠어요…. 다만 어휘에는 되게 민감해요. 정확하게 쓰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국어사전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곤 해요. 
 
방통대 간다고 했었잖아요?
입학했어요. 지금 방송대 학생이예요. (웃음)
 
일반 대학이랑 많이 다르죠?
일반 대학을 간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웃음) 요새 대학 등록금, 청년 실업 문제들이 많이 뜨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저를 시원하게 보시는 경향이 있어요. 되게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요.
 
나도 어제 대학 '합격'했다. 방송통신대 교육학과! 무시험 입학 대신에 졸업은 어렵고, 등록금은 학기당 35만 원이면 내가 벌어낼 수 있으니 부모님 눈치도 안 보이고, 내 돈 아까워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강의 듣는 최첨단 시스템에, 학우들은 각계각층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이라 사람 만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공부가 되고, 거기다 보너스로 학벌 편승에 대한 찝찝함도 없으며, 국립인 덕분에 부당한 일 생기면 인권위 진정도 쉽고, 무엇보다 고교 3년 동안 수능 따위 무시하고 사교육 걱정 없는 생활을 하며 읽고 싶은 책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는 특전까지! 이건 용감하고 힘든 결단이 아니고 너무 합리적이라 쉬운 선택이었다. 사교육 걱정 원천봉쇄하는 비결 여기 있다! - 2012. 1. 31. 재홍의 facebook에서
 
방통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다니나요? 재홍 씨 같은 경우는 무척 드물 텐데.
천안 교육학과 분들 오리엔테이션 할 때 보니까 대부분 연세가 있으시고, 여성들이 많으세요. 이유들도 다양하시더라고요. 내가 공부를 했더니 애들도 하더라, 하시는 분도 있고, 소박하지만 새로운 직업 구해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혹시 롤모델이나 멘토가 있어요?
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상의하거나 의논하는 분들은 좀 있죠. 그런데 가장 닮고 싶거나 가장 가까이에서 조언을 자주 구하는 분은 없고요, 앞으로도 롤모델 같은 경우는 아마 안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세계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웃음) 불필요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한테 필요한 것은 멘토라기보다 편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인 것 같아요. 일 말고요. 
 
연애가 필요하군요. (웃음) 
그런가요? (웃음)
 
마지막으로 요즘 고민이나 계획이 있다면 알고 싶어요.
고등학교 학생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뭔가 하고 싶어요. 그 문제를 자기 문제로 가지고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운동에 진전이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걸 운동으로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김재홍의 교육적 깨달음의 순간!-JaeHong's aha!moment! from 21Erick on Vimeo.
 
     ※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릴레이 인터뷰 #9 : 교육 운동 ngo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방통대 교육학과
        1학년 김재홍입니다.
 

        입시거부와 방통대 입학이라는 남다른 선택을 하고 활동 중인 김재홍에게 교육적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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